환단고기(桓檀古記) 또는 한단고기는 1979년 출간된 한국의 고대역사서이며, 이른바 동이족에 대한 자부심과 그 위대함을 서술한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. 진위 논란이 있으나, 남·북한학계 모두 그 내용이 왜곡된 위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.
《환단고기》〈범례〉에 따르면 1911년에 홍범도(洪範圖), 오동진(吳東振)의 자금지원으로 계연수(桂延壽)가 편찬하고 이기가 교열(校閱)했다고 한다. 그 후 계연수는 《환단고기》를 열 세살이었던 이유립에게 건네면서 '경신년에 공개하라'고 했다고 한다. 1949년에 이유립이 오형기에게 정서시켰고 한 차례 원본과 함께 관련 자료를 분실하였다가 그 후 기억을 되살려 필사하였다고 주장한다.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, 복원된 1979년 영인본(광오이해사 발행)이다. 2006년 초에 숙명여대에서 1912년에 첫 출판된 원본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있었는데, 1989년에 기증된 영인본(배달의숙 발행)이고, 뒷면에 1979년 인쇄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.
환단고기(桓檀古記) 또는 한단고기는 1979년 출간된 한국의 고대역사서이며, 이른바 동이족에 대한 자부심과 그 위대함을 서술한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. 진위 논란이 있으나, 남·북한학계 모두 그 내용이 왜곡된 위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.
《환단고기》〈범례〉에 따르면 1911년에 홍범도(洪範圖), 오동진(吳東振)의 자금지원으로 계연수(桂延壽)가 편찬하고 이기가 교열(校閱)했다고 한다. 그 후 계연수는 《환단고기》를 열 세살이었던 이유립에게 건네면서 '경신년에 공개하라'고 했다고 한다. 1949년에 이유립이 오형기에게 정서시켰고 한 차례 원본과 함께 관련 자료를 분실하였다가 그 후 기억을 되살려 필사하였다고 주장한다.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, 복원된 1979년 영인본(광오이해사 발행)이다. 2006년 초에 숙명여대에서 1912년에 첫 출판된 원본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있었는데, 1989년에 기증된 영인본(배달의숙 발행)이고, 뒷면에 1979년 인쇄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.